3연 정전으로 브리튼 통일도 엄청나게 오래 걸렸습니다.
아직 통일은 안됐지만 노팅엄이 넘어온 순간 거의 결판이 났다고 봅니다.
게임명 : 미디블 2 토탈워
발매일 : 2006(킹덤즈 2007)
제작사 :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 스튜디오
공식 사이트 : 공식
요크에 탐험가 길드 지부가 생겼습니다.
다른 길드랑 달리 탐험가 길드가 조금 애매한데, 주둔지 장군의 이동범위에 도움을 주는 트레딧을 단다고 합니다.
음... 애매해.
스코틀랜드가 번성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제각각 수많은 길드를 양산하였는데, 미지의 지역을 탐험하는 탐험가 길드가 요크에 주둔하였다.
스코틀랜드는 오랫동안 브리튼 북부에 같혀있었기에 대륙의 정세를 잘 아는 이들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밀라노를 겨냥한 십자군이 잘 되지 않았는지, 교황청에서 재촉을 하였으나.
에드워드 왕은 한사코 거절했다.
파문은 당하지 않도록 정전명령은 지키겠으나 그것 외의 명령은 따르지 않겠다고 한 에드워드의 말에 교황청은 기분이 퍽 상한 듯 하였다.
정전기한 중 아일랜드 통일을 위해서 에드워드 왕은 둘째 양자인 스튜어트 오브 네이른셔를 파견했다.
그 또한 아일랜드에서 경험을 쌓아 영웅이자 형인 알군처럼 되리라.
타라로 향한 스튜어트는 병력을 양성하고 북부의 도네갈 마을을 포위했다.
정전명령이 걸리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날. 잉글랜드의 함선들이 스코틀랜드의 선박을 공격하고 항구를 봉쇄했다.
루퍼스가 죽고 누가 새로운 왕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어리석은 행위였다.
선선대 정복왕 윌리엄처럼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선대의 루퍼스왕처럼 교황의 눈치를 보는것도 아니었다.
아무런 이득도 없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정복왕이 만든 거대한 잉글랜드는 어리석은 후손들에 의해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수년동안 잉글랜드의 뒤를 보살펴준 교황청은 잉글랜드의 폭주로 체면이 구겨졌다.
분노한 교황은 잉글랜드를 파문하였고, 정전명령까지 철회하였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이 기회를 놓칠 스코틀랜드가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왕자 알군에게 런던 포위명령을 내리고, 이자벨이라는 여성과 혼인을 시켜주었다.
스코틀랜드의 왕위 후계자이자 전쟁 영웅인 그의 결혼 소식에 온 스코틀랜드의 관심이 몰리었다.
대륙은 프랑스 덴마크, 폴란드, 베니스 4국연합과 신성로마, 잉글랜드, 시칠리아, 비잔티움, 헝가르 5국동맹이 패권을 놓고 다투고 있었다.
신성로마의 지도를 보면 서유럽쪽은 프랑스가 우세해 보이지만, 동유럽쪽은 5국동맹쪽이 유리해 보였다.
스코틀랜드의 대륙진출을 위해서는 프랑스가 조금 휘청일 필요가 있어보였다.
런던은 잉글랜드의 왕세자 시몬드의 400여명이 지키고 있었다.
대륙에서 부랴부랴 200여명의 원군이 당도했지만, 알군 더 로즈의 스코틀랜드 군대는 800명의 대군이었다.
노팅엄에서 선대 왕 루퍼스가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잊은 듯, 왕세자 시몬드는 군대를 이끌고 런던에서 뛰쳐나왔다.
어리석은 행위였다.
상대의 강함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실태를 돌아보지 않은 무모한 공격이 통할리가 없다.
이번에는 진형맞추고 그룹짜서 삑살이 안났습니다. 휴
저번 노팅엄에서는 안개를 틈탄 습격으로 스코틀랜드도 나름의 피해를 입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번 습격은 안개는 커녕 화창한 날씨로, 영국군의 모든 행동이 눈에 띄었다.
언덕위를 선점한 스코틀랜드의 화살비에 지오프리의 원군은 큰 피해를 입으며 언덕에 올라왔다.
반대방향의 시몬드의 군대와 힘을 합쳐 포위했다면 다른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으나, 그 정도의 전략안이 있는 장군이라면 애초에 야전으로 끌어오지도 않았을 터.
궁병을 노린 쇄갑기마대 위주의 차지 공격은 궁병들과 위치를 스왑한 창병 민병대에 의해 막혔다.
잉글랜드의 미늘창병대가 분골쇄신의 노력을 보였지만, 스코틀랜드의 병력엔 기병이 없었고
장창을 가진대신 빈약한 방어구를 지닌 미늘창병대를 하이랜더와 귀족 검사대가 파고들어 몰아냈다.
지난번의 데이빗 캔모어와 달리 깊은 추격을 행하지 않고, 알군 드 로즈는 뒤쪽에서 진격해온 시몬드 왕세자를 대비해 진형을 돌렸다.
후방을 노리며 가속해서 달려온 쇄갑 기마대의 차지를 창병들이 가볍게 막아내고, 그 옆에서 하이랜더들과 알군의 근위대가 포위망을 좁혀왔다.
잉글랜드의 대군은 패퇴했고, 왕세자 시몬드도 한명의 근위병과 겨우 혈로를 뚫어 후퇴했다.
그를 처치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보병으로는 기병을 잡을 수 없어서 병사들은 추격을 멈췄다.
알군의 근위대는 뒤쪽의 궁병대를 처치하기 위해 크게 돌아가 있어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잉글랜드의 오랜 수도 런던이 넘어가고, 스코틀랜드가 브리튼의 패자로 우뚝 올라섰다.
압도적인 양군의 차이를 뽐내며 런던 야전은 막을 내렸다.
이미 무너져내린 잉글랜드의 재정은 포로들의 몸값조차 물어내지 못했다.
조국을 위해 싸운 잉글랜드의 병사들은 조국에 의해 버림받게 되었다.
왕세자 시몬드는 대륙으로 도망가고, 남은 패잔병들이 다시 뭉쳐서 스코틀랜드의 영토가 된 런던을 포위했다.
방금전까지는 스코틀랜드가 공격자였으나, 지금은 방어자로 바뀌었다.
승리했다 하더라도 병력의 절반 가까이가 피해를 입었기에, 알군은 노팅엄의 데이빗에게 원군을 요청하는 사자를 보내었다.
노팅엄 병력은 런던을 포위할때 알군을 지원하러 대부분이 와 있었기에 데이빗은 새로이 병력을 양성했다.
잉글랜드가 포위는 했지만, 그들도 온전한 병력이 아니기에 금방 공성전을 치루지는 않을 것이다.
대머린데 왜 미남일까?
알렉산더 캔모어가 세네딕 마캄브라는 남자를 양자로 거두었다.
용기가 있고, 지휘관으로도 유망한 그는 미남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준수한 외모의 장군이었다.
또 무엇보다 충성심이 뛰어난 점도 왕가의 마음에 쏙 들었다.
탐험가 길드는 엔트워프 공격을 의뢰했다.
하지만 엔트워프는 중립국인 덴마크의 영역이었다.
잉글랜드와의 전투때문에 5국동맹의 심기를 건드렸는데, 다른 파벌인 4국연맹의 영토에 손을 댄다면 온 유럽이 작은 섬나라를 규탄하리라.
아직 파악못한 유럽의 정세를 본 다음, 천천히 결정할 문제였다.
10성장군 + 7성장군 VS 클론2명
1년의 포위 끝에, 잉글랜드의 잔당들이 런던을 공격했다.
그 수 약 480여명.
반대로 런던의 수비병은 550여명에 이르렀고, 데이빗 캔모어가 노팅엄에서 200여 군사를 이끌고 도착하였다.
평야에서 맞서 싸워도 이겼겠지만, 굳이 피해를 더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런던을 완전히 스코틀랜드의 영토로 만드는가가 결정되는 전투였다.
런던을 가운데 놓고, 데이비 대장의 군대는 정문 랄프 대장의 대규모 병력은 후문에 주둔했다.
만일 그들이 첩보원을 심었더라면 후방의 문은 열렸으리라.
하지만 런던에는 이미 스코틀랜드의 첩보원이 주둔하여 있었기에 적의 스파이는 들어오지 못했다.
뒤의 적병들은 무시하고, 당장 앞의 적들은 공성추 하나와 사다리 하나가 전부였다.
사다리가 걸릴 좌측성벽에 귀족검사대를 배치하여 적을 맞이하게 하고, 성문이 깨지자마자 밀려들어올 쇄갑 기마대를 막기 위해서 성문 뒤를 창병대에게 지키게 하였다.
병력수가 줄어 온전한 분대마저 이루지 못한 패잔병들의 한계였다.
미늘창병대는 사다리를 기세좋게 거는데에는 성공했으나, 귀족 검사대의 서슬퍼런 칼날에 몇명의 목에 베이자, 재빨리 퇴각했다.
성문을 깨고 진입한 쇄갑기사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문을 두들기는동안 성벽에서 쏟아진 화살비가 기사대를 갉아먹었고, 살아남고 진입한 자들조차 창병대의 방해로 제대로 창을 휘두르지 못하고 낙마하였다.
적장 데이비가 사살당하자 퍼렇게 질린 잉글랜드 병사들은 무기를 놓고 후퇴했다.
알군의 근위대만이 그들을 쫓아 포로들을 사로잡았다.
아무도움도 안되는 쓰레기들 ㄱ-
지원군도 조작하고싶다.
뒤에서 돌아온 랄프의 부대는 부서진 성벽을 보고 기세좋게 돌입했으나, 굳게 지키고 있는 스코틀랜드 병사들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후퇴했다.
알군의 근위대가 그들을 도륙했고, 데이빗의 원군이 적의 퇴로를 막아 사로잡았다.
노팅엄을 정복한 남자 데이빗과 전쟁영웅 알군 드 로즈.
480여의 적을 상대로 단 14명의 피해만 입고 런던을 수호했다.
2차 런던격전은 스코틀랜드의 대승으로 끝나고, 온 유럽이 이를 런던 대첩이라고 불렀다.
브리튼의 패자 잉글랜드를 몰아넣은 알군과 데이빗에게 온 유럽이 경외심을 가지게 된다.
같은 해, 아일랜드 도네갈.
스튜어트는 기존의 방침과 달리 공성무기를 만들어도 공성전을 펼치지 않고 도네갈의 식량이 떨어질때까지 포위했다.
참다못한 도네갈의 병력들이 뛰쳐나왔으나, 제대로 식량공급을 받지 못한 적들은 비실비실해 보였다.
양측의 전투법은 같았다.
보병진은 보병들끼리 맞붙고, 궁병대는 궁병들끼리 서로를 겨누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겐 하나의 카드가 더 있었다. 근위대와 보더 경기병대였다.
보병대의 전장을 피해 돌아온 경기병대가 갤로우글래스 병사들을 휩쓸고
시간차로 근위대의 차지까지 들어오면서 적장은 사망.
한순간에 지휘관을 잃은 적병들은 광장으로 후퇴했다.
경기병대와 근위대가 후퇴하는 적을 베어넘기며 밀어붙였고.
30여의 피해만 입고 도네갈을 스코틀랜드의 손에 넣었다.
두개의 대승에 기뻐한 에드워드 왕은 스튜어트에게 아일랜드 정복을 명하고, 알군과 데이빗에게 브리튼의 마지막 영토인 사우스 햄튼 공략을 명했다.
사우스햄튼의 간자가 아뢰되
성 내부의 기사들은 패잔병들 뿐으로 그 숫자는 많지 않고, 보병대도 대다수가 훈련받지 못한 민병대라고 했다.
그러나 보병의 숫자만큼은 많기 때문에 그것만은 주의하라 알렸다.
데이빗은 노팅엄으로 돌아가고, 알군은 사우스햄튼 공격 준비를 시작한다.
서유럽에선 4국연맹의 프랑스가 신성로마를 밀어붙이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
동유럽에서는 반대의 상황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연맹의 베니스가 동맹의 비잔티움 제국에게 속국으로 들어가면서 균형이 깨지는 것으로 보였다.
과거 무례한 비잔티움의 사자를 쫓아냈었는데 동쪽의 패자가 된 비잔티움의 행보가 걱정되는 스코틀랜드였다.